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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토스, 유난한 도전을 읽고 북토크에 가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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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토스, 유난한 도전을 읽고 북토크에 가다

카카수(kakasoo) 2022. 12. 10.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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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탁월함이란.

책을 읽기 전, 내가 그간 들었던 토스에 대한 이야기는 딱 한 단어로 얘기하면 '빡세다' 였다. 매일 새벽까지도 일해야 하는 팀이라는 소문이 들렸고, 그 때는 1~2년 바짝 일해서 목돈 마련하고 나가는 게 목적인 팀이라는 말도 들었다. ( 딱히 그거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부 구성원들이 그렇게 일하면서도 재미를 느낀다면, 그건 오히려 정말 좋은 조직이라는 생각을 한다. ) 하지만 내가 사회 생활을 하면서 들은 이야기 중에는 그 반대의 이야기도 많았다. 토스의 성공 신화를 찬양하는가 하면 더 나아가 이승건 대표는 거의 신격화된 인물이었다. 토스에 대한 이야기는 무엇이 옳은 것일까. 그들은 정말로 신화를 써내려갔는가. 성공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성공했다고 해서 모두 신화처럼 거창한 수식어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성공과 성공 사이에서 특히나 더 뛰어난 것, 즉 탁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2. 현대적 배경의 시대극

책을 읽고 있으면 토스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면서도 이게 진짜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곤 했다. 이미 성공했으니깐 하는 이야기 치고는 지나치게 성공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자랑이라는 생각보다도 고고학자가 된 것 마냥 이 이야기의 진위여부를 더 알고 싶어 했다. 토스 '유난한 도전'은 마치 고전을 읽는 듯 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마치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한 고전 같았다. 사자성어가 나오면 당연 초한지나 삼국지처럼 먼 옛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듯, 그들의 고군분투 역시 스토리텔링은 고전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 책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은 모두 현대적이라 이질적인 감각이 더욱 재밌게 느껴졌다. 먼 미래, 정말로 먼 미래에 21세기의 이야기가 '시대극'으로 분류되는 날이 오면, 그 미래의 독자들은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3.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다시 말하지만, 토스를 중심으로 도는 소문들은 쉬운 것 하나가 없다. 좋은 대우가 타당하다고 느껴질 만큼의 업무들이 토스에 대한 인식이었다. 물론 토스 채용팀에서는 그런 사실을 부정할 테고, 이미 들어간 사람들은 이를 다르게 설명하겠지만 어쨌거나 밖에서 보기에는 그게 보편적이었을 따름이니 이런 소문이 났겠거니 한다. 그렇다면, 소문은 소문이고 실제로는 어떨까. 이 책 역시 이미 성공했으니까 쓸 수 있는 책인가. 그들의 성공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의 성공 이야기가 내게도 적용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자기계발서를 읽는 독자가 모두 그 자기계발서의 저자처럼 될 수는 없듯이, 나는 그 만큼이나 독자와 저자 사이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교훈보다는 그저 이야기에서 재미를 느낄 생각으로 책을 읽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이야기에 몰입하고, 일을 하고 싶어져 미칠 거 같은 나를 발견했다. 그들처럼 일하고 싶고, 또 성공하고 싶단 생각이 머리를 꽉 채웠다. 아, 이거구나 싶었다. '성공한 사람들은 일단 듣는 사람조차 재밌어질 만한 일을 하는구나.'

 

4. 주변 사람도 설득 못하면 창업을 어떻게 해?

우리 회사 대표랑 창업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돈도 안받고 일하지 않을 사람들 3~5명을 모을 수 있으면 창업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기 하루 전에 나는 다른 사람에게, 전 직장에서의 월급이 최저 시급이나 다름 없어서 너무 힘들다는 하소연을 한 적이 있기에 조금 뜨끔했다. 하지만 뜨끔할 것도 없이, 충분한 대우를 받으며 일해야 한다는 게 직장인으로서의 상식 아닌가. 그러나 대표들의 상식은 달랐던 모양이다. 만약 아무런 대가 없이 일할 수 있는 사람들 ( 앞으로도 돈을 안주겠다는 말은 아니다. 성공하고 주겠다는 걸로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가, 그 정도의 비전과 실현 가능성을 가졌는가의 문제다. ) 을 모을 수 없다면 투자자들에게 나만 믿고 억 소리 나는 돈을 어떻게 달라고 하냐는 말에는 나도 설득되고 말았다. SEED 라운드의 회사는 아직 투자를 받지 못한 게 아니라, 인적 자원이라는 투자로 시작하는 거라는 걸 뒤늦게 이해하고 말았다. 이승건 대표의 말도 똑같았다. 마음 아픈 일이지만, 이승건 대표 역시 회사의 돈이 바닥난 시점에서 6개월을 더 버티고 끝내 일어났다고 얘기했다. 통장에 몇 만원 남지 않았을 때, 선물 세트를 4개 사다가 4명이 팀원에게 주면서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망했다', '이제 돈이 없다'고. 다만 아직 두 가지의 길이 있는데 하나는 3년 간의 기억을 아픈 추억으로 남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분을 받고 무상으로 더 해보는 거라고. 그 4명은 모두 남았고, 6개월 만에 지금 우리가 아는 토스가 탄생했다고 한다.

 

5. 35페이지

우리 회사는 어느 정도 레벨에 와 있는가. 낮게 보면 27페이지, 길면 35페이지였다. 참고로 내 전 직장은 27페이지에 '문자 그대로' 망했다. 지금 회사는 그보다도 8페이지 정도 더 쓴 것이다. 1년에 35페이지를 쓴다고 한다면 얼추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토스처럼 되는 것도 망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통계 상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3~5년만 버티면 성공하듯이, 망한 회사는 언제나 통계에 빠져 있다. 우리가 앞으로 1년에 35페이지의 서사를 쓴다고 하더라도, 딱 1년 더 활동하고 70페이지로 완결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인기 없는 만화가 먼저 완결하듯이.

 

6. 몰입의 힘

개인적으로, 별 거 아닌 것처럼 말한 이야기에, 어쩌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은 이야기에 나는 감탄했다. 바로 엑셀 이야기였다. 다른 직원 하나가 엑셀로, 토스의 사업이 비즈니스적으로 취약함을 이야기 했을 때, 이승건 대표는 엑셀로 그런 게 가능한지 몰랐다고 한다. 그 날 이승건 대표는 엑셀에 푹 빠지게 되었고, 직원이 한 번에 뚝딱 만든 엑셀 시트 한 장을 똑같이 만들기 위해 일주일 동안 엑셀만 만졌다고 한다. 대표라는 사람이 이런 데에 뭐하러 시간을 쓰는 거야, 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감탄했다. 이런 정신이 지금 토스 앱과 같이 뛰어난 제품을 만들었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 가지 제품에 몰입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만의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을까.

 

7. 가진 것

이 부분은 정말 내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대목이었다. 가진 게 없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건, 존재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던진 철학자로부터 많이들 들었던 말이다. 어차피 죽으면 뭐든지 내려놓고 가야 한다거나, 아니면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오늘 하루를 특별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이야기들처럼, 늘 그렇듯이 들어왔던 말이다. 하지만 철학자가 아닌, 어떤 회사의 대표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들으니 조금 어색한 감이 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많이 가지고자 한 사람이 아닌가. 본인이 가진 게 없고, 또 가져갈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는 이승건 대표의 말에 조금 모순을 느꼈다. 정말 이 말을 한 사람이, 국내에서 재산이 많기로 손꼽히는 사람 맞는가. 시간이 지나고 다시 생각해보니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이승건 대표는 이후 100년 뒤에도 기억될 만한, 정말 역사에 남을 만한 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는데 아마도 그 뜻이리라. 가진 게 없고, 또 가져갈 수 없기 때문에, 반대로 남겨두고 가고 싶은 걸 생각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내 안의 어지러움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다.

 

8. 미워하지 않을 용기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을 내밀라는 건 마태복음에 나오는 문구다. 기업에서의 좋은 조직 문화 역시 이 말이 필요한 모양이다. 이승건 대표는 좋은 문화는 창업자의 의지, 채용, 그리고 잘못되더라도 다시 한 번 믿는 용기,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생각의 깊이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흔히들 스타트업은 창업자가 문화를 만들 때, 조직원들은 그 문화를 같이 만들고, 또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그게 초기 멤버들의 역할이라고 하는데, 마지막으로 말한 세 번째는 정말로 대표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미움 받을 용기도 있지만, 반대로 미워하지 않을 용기도 있는 모양이다.

 

9. 철부지

위의 이야기는 내가 책을 읽고 느낀 점과, 북토크로 치면 30분 정도의 이야기를 정리한 것 뿐이다. 같이 간 사람과 같이 밥을 먹고, 또 집에 가면서 서로 느낀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 분이 '철부지'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아냐면서 그 말의 의미를 설명해줬는데 참 와닿는다. 수확철의 철이 철부지의 철 자와 같다고 한다. 부지는 '아닐 부'에 '알 지'를 써서 알지 못한다는 의미이니, 철부지는 철을 모른다는 뜻이라고 한다. 즉, 해야 할 일을 해야 할 때에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인데, 개인적으로 그 분의 말이 참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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