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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soo
처음 커리어를 '신생' 스타트업으로 하고 나서 (2) 본문
이 글은 과거에 쓰고 미처 올리지 못한 글이라, 글의 시점이 지금보다 더 이전이다.
연봉협상을 처음 한 신입의 심리
내가 생각하는 게 있는데, 그게 상대의 생각과 같을까, 그걸 잘 모르겠어.
말을 해도 될까.
하지만 서로 생각이 달라서, 결국 관계만 훼손시키고 끝나는 게 아닐까, 그게 두려워.
아니, 오히려 상대에 대한 실망보다도 이 생각이 나만의 생각일까봐, 그게 더 두려워.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지.
그래, 결국은 말해야겠지. 말하는 게 맞을 거야.
설령, 이 관계가 망가진다고 하더라도, 그러는 게 맞아.
나는 상대가 아니라, 내 이기심만을 챙기는 게... 아마 맞을 거야.
"오빠, 딴 여자 생겼어?"
"아니, 연봉협상 얘기야..."
애초에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상대가 같은 마음이길 바라는 마음.
회사와의 협상은, 마치 첫사랑에 빠진 순간과 같았다.
다만 서로 간의 마음을 확인한 결과가, 언제나 그렇듯 기대와는 다를 수 있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연봉협상
제가 생각하는 연봉 대가 있는데, 그게 회사의 판단이랑 같을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말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혹여, 말을 했다가 생각이 다르면, 결국 관계만 훼손시키는 것 아닐지 두렵네요.
제가 생각한 비즈니스에서의 제 비중이, 회사 측의 생각과 다를까봐요.
...그래도 말해야겠죠, 결국 제 일인데.
설령 잘 안 풀려서, 같이 갈 수 없게 된다고 하더라도, 말하는 게 맞겠죠.
회사에 충성심이 강한 것도 좋지만, 일단 제 앞가림부터 해야 하니깐요.
내가 수습으로 계약한 기간이 끝나갈 무렵에도, 연봉협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나보다 먼저 들어온 사람들도, 그런 얘기 없이, 3개월이 지났다고 했었다.
개발 문화가 강한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하셨는데, 왜 아무런 언급조차 없는 거지?
좋은 개발 문화를 만든다는 게 개발자들을 최저 시급으로 일시키는 거였나?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간다.
성공의 과실은 달겠지만, 요즘 올라오는 채용공고를 보면, 참을만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길면은 5년도 참아야 할 일인데, 바로 옆 회사들은 신입에게 업계 최고 수준을 준댄다.
그렇게 고민하던 참에 대표님이 나를 부르고, 월급을 얼마만큼 올려준다고 통보하셨다.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못했다.
위에 멋지게 써놓은 말을, 나는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내 연봉은 확정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쓴다는 게 다행이라고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마스크가 없으면 내 표정이 다 드러났을 테니깐, 근데 아마 써도 드러났을 지도 모르겠다.
연봉 협상을, 첫 사랑 때문에 쩔쩔매던 것처럼 고민하던 내가 갑자기 바보같았다.
이 일로 회사에 대한 애착을 잃는 게 싫었다.
애착을 잃어도 되지만, 그래도 돈 때문에 애착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때의 결심은 고작 3개월 밖에 더 가지 못했고, 결국 조직을 떠나게 되었다.
비즈니스에서의 내 비중
"아니, 그러면 너도 가면 되잖아."
"그럴까?"
그럴까, 라는 생각이 든 시점에서, 내가 회사에 가진 애착은 집착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에 합류한다는 자부심, 자존심이, 사람을 잡고 물어지는 것이다.
뭔가, 제대로 빛을 보기도 전에 끝내는 것 같아서, 그게 스스로 한심하게 했다.
내가 하고 있는 역할이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지에 대해서 곰곰히 고민해본다.
스타트업에서, 홀로 서버 개발을 전담하고 있어서, 내 퇴사가 좀 크리티컬하지 않을까.
대표의 생각에는, 개발자들이 분노할 때마다 내보내고 새로 뽑는 게 경제적인 것일까?
나한테 했던 말들이 그냥 사탕발림에 불과한 것인지, 지금까지의 발언을 고민해본다.
결론은 그저, 극 초기 스타트업이, 너무나도 가난하다는 것 뿐이었다.
회사에 여력만 되면 잘 해주고 싶겠지만, 안타깝게도 초기 스타트업은 너무 가난했다.
초기 스타트업에 다니는 개발자들은 매우 적은 연봉을 받으면서도 오랜 기간 버텨야한다.
대표도 도전 중인 일개 사람인지라, 사람에게 서운함을 느끼면 안 되겠지만,
여기서 내 가치를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단 생각에 계속해서 억울함을 느꼈다.
내가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것은, 그저 내가 완성되지 못한 사람이라서,
그저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서, 버틸 수 없는 게 곧 버티지 못하는 이유였다.
상대적 격차
똑같은 일을 하거나, 내가 더 잘한다고 자부하는데도 불구하고, 내 연봉이 낮은 것.
회사에 말을 꺼내보려 했지만 애초에 회사 주머니 사정이 좋아 보이지 않는 것.
그런데 회사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니, 오히려 고민은 더 더욱 깊어지기만 한다.
"나는 업계 평균 연봉도 못받고 있는데 왜 걱정하지 말라는 거지?"
초기 멤버의 가장 큰 덕목은 아무래도 인내였던 모양이고, 나는 그게 없는 모양이다.
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나 많이 의식하는 쪽이었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상대적 격차를 느낀다.
"스타트업은 미쳐야만 할 수 있는 거에요!"
"...저는 요즘 제정신이 들려고 하는데요?"
"망치 가져와요."
우스갯소리로, 직장 동료들이랑 스타트업은 종교니, 광기니 그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런데 그런 얘기가, 타당한 이야기인지, 우리 조직에게 반문해보고 싶다.
우리가 그 정도로 미친 사람들인지에 대해서, 우리가 여기에 많은 걸 걸었는지에 대해서.
스타트업에 다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래서 당신들은 얼마나 미쳤나요?" 라고 묻고 싶다.
회사와 개인의 성장
회사의 성장은 폭발적이다.
한 번 성장세에 오른 회사는 2배, 4배, 8배,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개인의 성장은 절대 그럴 수 없고, 시간에 따라 정량적으로만 성장한다.
그러다보니 누군가는 회사의 요구보다 점점 뒤처질 것이고, 누군가는 버틸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회사는, 직원들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될 것이고,
이 때부터 외부 인력들을 들여오는, 일종의 긴급 수혈과 같은 일을 겪어야 한다.
초기 멤버는 그러면 뭘 해야 하는 역할인가?
- `회사의 초기 문화를 형성`하고,
- 추후 멤버들이 늘어나더라도 그 `문화를 유지하게끔 노력`하며,
- 회사의 성장으로 인해 `도태되지 않도록 계속 자기 발전`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초기 멤버라고 해서 모두 강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스타트업은 다른 회사보다도 더 뛰어난 사람들이 있어야만 하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대기업보다 줄 수 있는 게 적다보니 현재로서는 완성되지 못한 사람들이 즐비한다.
그래서 나는 초기 멤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다.
당신들은 어디까지 성장할 자신이 있는지, 그리고 그러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지.
비단 우리 회사만의 일이 아니라, 스타트업에 있는 모든 직군, 모든 사람에게 묻고 싶다.
그렇지만 뭔가 빛을 보기도 전에 나가버린 나한테는, 성급한 고민이었을 따름이다.
깨달은 점
- 어릴 때 출근하던 아버지에게 '돈 많이 벌어오세요!' 라는 인사는 불효였다.
- 왜 대부분 스타트업 회고록이 퇴사나 이직인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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