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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밍/Thinking

처음 커리어를 '신생' 스타트업으로 하고 나서 (1)

카카수(kakasoo) 2022. 7. 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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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도 설레는 Boostcamp.

부스트캠프를 수료할 때 저는 3학년이었다.

부스트캠프에서의 반 년은 제 인생 더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이었지만, 여전히 제 스스로에 대한 의문은 남아있었다.

아무리 잘 성장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공부를 시작한지 이제 막 1년이 되었기에, 자신감을 가지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항상 하던 고민에, 결국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했다.

사실 잘 찾아보면 부스트캠프에서 취업 연계로 더 좋은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자존심을 지키려던 선택은 아니었을까.

 

대학에 돌아오고 나서 다시 한 학기의 시간을 보내면서, 부스트캠프가 그리워졌다.

그 때처럼 힘들어도 계속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고,

그래서 우연찮게 한 스타트업에 가게 되고, 안타깝게도 거기서 반 년 만에도 나오게 되었다.

지금부터 하려는 얘기는 왜 괜찮은 기회들 내버려두고 스타트업에 갔고, 또 거기서 뭘 건졌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스타트업이다보니, 악의는 없었겠지만 체계가 없고, 사람의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결코 이전 직장에 대해서 안좋게 말할 생각은 아니고, 애초에 그게 나한테 이롭지 않다는 것도 잘 이해하고 있다.

 

선배의 친구이자 대표

학기가 다시 시작될 무렵, 개강하기 전 일주일 정도가 남은 시점에 선배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 개발자를 찾고 있었다.

대학교 커뮤니티에 글을 쓰면서, 대신 사람을 찾아주고 있던 건데 우연찮게 제가 거기에 걸려들었다.

선배의 친구 분께서는 저를 키워주겠다는 말을 했었는데, 사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 분을 알고 나서, 또 실망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모두가 처음인 곳이 스타트업이기 때문이다.

대표님도 대표가 처음이고 ( 그 전에 몇 번의 경험이 있다고는 하지만 저보다 한 살 많은 분이셨으니깐. )

기획자도, 개발자도 모두 1년 남짓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작은 조직이었기에, 누군가 누구를 키우는 건 말이 안됐다.

 

오히려, 잘 되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곳이기에 그 성장에 뒤쳐지기 않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이 요구됐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관심이 많았고, 언젠가 창업이 하고 싶었지만, 설마 저도 이런 신생 스타트업에 합류할 줄은 몰랐다.

이게 어쩌면 제 커리어를 낮추고 시작하는 일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그 때는 하다 보면 뭔가 빛이 보이겠거니,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했던 거 같다.

무엇보다 모든 걸 제가 다 선택할 수 있다는 엄청난 자유가, 그리고 미처 다 보지 못했던 책임이, 그저 즐거웠다.

 

방금 시작된, 그러나 낡은.

"어? DB에 deleted_user 테이블이 있는데 이건 뭐지?"
"어? 각 유저의 상태마다 테이블이 하나씩 만들어져 있네...?"
"어?"

 

스타트업이라고 해서 신 기술을 사용하는 건 아니었다.

내 이전에 있던 개발자가 짜놓고 도망간(?) 코드는, 이제 막 DB를 배웠다고 생각될 만큼 수준 낮은 설계였고,

사람마다 저 마다 방식이 다를 수 있겠지만, 누가 봐도 설계 오류라고 할 만한 게 곳곳에 숨어 있어 나를 힘들게 했다.

제 이전에 퇴사한 개발자가 외국계 기업에 도전한다는 꿈을 가지고 퇴사했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그 분을 메꿀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이게 웬걸.

 

환경변수가 그대로 노출된 상태로 코드를 짠 것도 있는 게, 코드가 아니라 함정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나중에 더 많은 개발자들과 만나 이야기하고, 또 이직을 하면서도 이제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스타트업이 방금 시작되었다고 해서, 절대 새로운 게 아니라는 것.

오히려 성공하는 길을 답습하는 스타트업은 그 어떤 기업보다도 더 레거시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결국 한 시간동안 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대표님에게 장문의 글을 보내, 이 코드를 그냥 다 갈아엎자고 말했다.

 

"대표님, 제가 코드를 보니 상태가 심각해서 당장 고쳐야 할 거 같아요."

 

좋은 코드라는 게 뭘까?

개발이라는 게 뭘까?

비즈니스 영역에서 개발자의 비중은 이토록이나 낮은 것인가?

어떤 코드든지 돌아만 가면, 그래서 돈만 벌 수 있으면 그야말로 장땡인 건가?

스타트업에 있으면서 가장 고민한 부분이, 비즈니스와 개발 문화 사이에서 어떤 걸 택해야 하는 거였다.

당연히 사람에게 산소가 필수적이듯, 기업에게 필수적인 건 돈이고, 그러면 비즈니스가 있어야 개발자도 있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런데 아직은 제가 어려서인지 ( 아직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 내가 어리다는 표현을 쓰는 걸지도 모른다. )

이게 정말 좋은 길인지를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 때 내가 한 선택은, 차라리 내가 남아서 일을 더 하더라도, 절대 개발 문화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거였고,

덕분에 스타트업인데도 불구하고 TypeScript, Nest.js, TypeORM 등 조금 더 진보적인 스택을 고를 수 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퇴사한 후에는 이게 과연 옳았을까 싶다.

만약 레거시한 기술들을 쓰라고 했으면 제가 있지도 않았겠지만, 어차피 나갈 사람이었으면, 또 모를 이야기다.

이전 직장의 대표님은 내가 만든 코드를 처치곤란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는 수준 높다 생각하는 결과물이지만, Nest.js 개발자를 구하지 못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지만 놀랍게도, 이전 직장은 아직 백엔드 개발자를 채용하지 않은 거 같다.

 

뭐가 맞는지도 모르는 채

처음으로 연애를 할 때, 이게 상대에게 가스라이팅 당하는 건지, 아니면 원래 연애란 게 이러는건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첫 직장이라는 것도 연애랑 비슷해서, 내가 열정적인 것인지 아니면 회사에게 과한 충성을 보이는 건지 몰랐었다.

출근하기로 약속한 날짜가 되기 1~2주 전부터 회의에 참석하고, 또 이상한 코드를 고쳐주는 등...

'왜 벌써부터 내가 일을 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다만, 아무래도 나도 이상하다는 자각이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밤 늦게까지 회사에 남거나, 또 주말에도 일하는 걸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싫었고,

사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 하는 걸, 회사 탓으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니 스스로 미래, 꿈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스타트업은 필요 이상으로 일을 해야 할 수도 있지만, 그걸 어떤 식으로 하느냐는 정말로 큰 차이가 있는 거 같다.

좀 더 우아하게, 직원들이 자부심을 느끼면서 일을 하게 할 수는 없었을까.

사실 직원이면서도 직원답지 않게, 이런 일을 생각하는 것도 나름 매력적이긴 했던 거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마치 대표인 것처럼, 대표의 시각에서 나라는 인간을 어떻게 해야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차라리 말하지나 말지

"선배, 진짜 선배 지인 분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할 거에요... 날 소개시켜줬잖아요..."

 

스타트업은 정말 힘든 곳이었다.

내가 입사를 하고 나서, 다음 달이면 런칭을 할 거니 와서 코드를 보고 숙지하는 시간을 가지면 된다고 했는데,

이대로 런칭하다가는 곧 망할 거 같은 쎄한 느낌이 시작부터 몰려왔다.

 

그래서 달력에 새겨진 일정들을 보면서, 중간 단계들을 수립하고, 기간 안에 끝맺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달력에 새겨진 일정들은, 조직원들 누구도 믿고 있지 않은 기간 산정이었다.

개발자들만 바보같이 그 일정 안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던 셈이었고, 나는 거기에 대해 크게 실망했다.

기간을 촉박하게 잡아서가 아니다.

 

어느 날 기획자가 와서 말하기를,

"저번에 같이 술 마시면서 얘기해봤는데, 사실 대표님도 그 때까지 할 거란 생각안하시더라." 라고 말했는데,

그걸 왜 나한테 말했을까, 아니 왜 개발자들에게 말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숨기지, 차라리 계속 비밀로 하지 왜 말했고, 왜 하필 그걸 술 자리에서 이야기했을까?

 

나는 삼국지에서 조조의 일화를 떠올리곤 하는데, 조조가 군사들을 이끌고 행군하다가 식량이 떨어진 적이 있었댄다.

그 때 조조는 조금만 더 가면 매실 열매가 잔뜩 열린 숲이 나온다고 병사들에게 거짓말을 해가며 행군을 했다는데,

그런 의미라면 나도 좋다.

그런데, 아직 매실이 나오지 않은 시점에, 그걸 스스로 털어놓는 이유란 뭔가.

다시 말하지만, 신생 스타트업은 모두가 각자의 역할이 처음인 곳이라, 어딘가 어리숙한 느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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