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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밍/Thinking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

카카수(kakasoo) 2023. 3. 10.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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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책에서 본 글귀가 강한 인상을 남긴다.

 

지인이 오랜만에 메시지를 남겼다. 고민 상담을 하고 싶은데 전화 좀 해도 되겠냐고 하셨다. 자기 공부를 하겠다고 잠깐 멀리 나가 계신 분이셨는데 이 분은 나와의 관계도 매우 좋은 분이었다. 그래서 고민이라는 단어보다도 그저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는 점에 더 눈이 갔다. 나는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에, 괜찮다고 말하는 대신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어떤 고민일까 흥미가 동할 시점, 상대가 최근 너무 힘들다고 우는 게 아닌가. 아뿔싸, 고민이라더니 진짜로 심각한 상태였구나. 나는 내가 상대의 고민을 가볍게 생각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상대를 달래주고, 그런 일로 힘들어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어떤 위로도 지금의 힘든 순간을 희석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부정당하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라고.

 

지인은 같이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동료들이 자기를 무시한댄다. 비록 학생들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며 또 따돌리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하고 한댄다. 그 일 중에는 심지어 밤 늦게까지 공부하는 걸 두고 남들 몰래 따로 공부한다며 핀잔을 주는 일도 있더랜다. 나는 대학도 나온 성인들이 그러고 논다는 게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내 지인에게 시비를 걸 때 하던 말들이 부질 없는 말들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말하던 더 짧은 코드와 더 예쁜 코드라는 게 얼마나 부질 없는 소리인가. 우리는 예술가가 아니다. 우리는 기술자고, 또한 비즈니스를 이루는 사람들이다.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더 오래 생존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생존에 필수가 아니다. 그렇기에, 물론 그걸로 마음 고생 심하게 하고 있는 지금의 전화 상대에게는 미안한 일이겠지만, 나는 그들이 귀엽게 느껴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틀린 말을 하는 상대도 아무것도 모르니 틀린 말을 당당하게 하고, 듣는 사람도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그 틀린 말에 쉽게 상처받을 뿐이다. 알면 된다. 알면 덜 아프다.

 

우리는 무지로 인해 상처를 받고, 또 그 무지로 인해 상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누구나 힘든 순간이 있었을 테니 딱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만, 나에게도 힘든 순간이 있었다. 나는 그런 순간을 내 잘못으로 여기는 데에 능숙했다. 어릴 때에는 그 정도가 지나쳐서, 초등학생 때 교사에게 뺨을 맞은 순간까지 내 잘못이라고 생각해왔다. -오히려 내가 잘못해서, 물론 잘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초등학생이 잘못했으면 얼마나 잘못했겠다고 어린애의 뺨을 때리겠는가- 다만 내가 성인이 되고는 그런 생각이 옅어졌다. 1년, 2년의 시간이 흘렀기로서니 내가 아이와 어른의 구분으로 나뉘는 게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생이 되고 난 나는 정말로 성인인가 의문이 들었다. 나에게는 그 만한 능력과 책임이 주어졌는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무엇이 다르기에 나를 어른이라 정의하는가. 내가 어릴 때 본 대학생들은 그렇게나 어른스러웠는데, 지금의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해서 왜 그렇지 못하다고 느끼는가?

 

자연스레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어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사실 어린아이 같은 구석이 있다는 걸 깨닫고, 사실 아이, 어른은 관념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누구도, 내 뺨을 때렸던 선생마저도 아직 어른이 아닐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제로도 그 선생님은 어렸지 않은가. 지금의 내 나이보다 많아봐야 대 여섯 살 많은 분이셨을 테니 젊다는 말을 들을지언정 이제 나이가 많다는 말을 들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니 누군가 하는 말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스스로에게 상처줄 필요는 없었다. 어른이라는 존재들도 그럴진대 아직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단 사람들이라면 더 더욱 그러하다. 그런 치기어린 소리에 마음 아픈 것은 그들에 의한 상처보다 자해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뺨이 얼얼했을지언정 내가 맞을 만 해서 맞았다는 생각은 선생 탓은 아니었을 것이다.

 

힘든 시기는 어떻게 넘겨야 하는가. 시간이 지나, 나는 그런 순간에 글을 썼다. 힘든 일도, 그 감정도, 모두 기록으로 남겼다. 인생의 깨달음에는 항상 좋은 감정만 남길 필요가 없었다. 힘든 순간이라고 해서 기록하지 않으면 결국 반성하는 것도, 그걸 양분 삼아 성장하는 것도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었다. 지금 당장은 힘든 일들을 곱씹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던가, 다만 하다못해 그 감정으로 소설을 쓰더라도 잘 팔리겠다는 생각에 기록을 남겨두었다. 그렇게 쌓인 글들은 이제 내 성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나 다름없다. 나는 내가 썼던 글들이 모두, 그 당시의 기분에 좌우되어 우울, 걱정, 분노를 품고 있다고 하더라도, 보고 있으면 그 때의 감상과 배움이 떠올라서 감격스럽기만 하다. 하루 하루 잊혀져갔을 시간들을 기억하고, 그로 인해서 어제보다 무엇이 더 나아졌는지를 자각하는 계기가 된다. 오죽하면 나는 365일을 모두 기록하여, 언젠가 내 달력이 기념일로 가득 차기를 원하게 되었다.

 

내가 겪었던 일들이, 그리고 그 깨달음이 남들에게 동등한 가치가 있을 거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각각의 사건은 각각의 사람에게 또한 각각의 통찰을 제공해줄 것이라 믿는다. 내가 같은 일을 겪을 때 같은 감상을 품을 거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일을 겪은 모두가 저마다의 생각을 품는 것을, 그대로 잊어버리는 것은 아깝지 않을까. 나는 인생은 사건의 연속이고, 사건이 '나'를 정의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동전 위에 종이를 놓고 연필로 긋다보면 그 아래의 동전 모양이 유추되듯이, '나'라는 존재는 스스로도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지만 다양한 사건이 겹쳐지다보면 비로소 그 아래 사물을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의 사건은 하나의 연필 획과 같다. 다양한 일을 겪으면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를 알아간다. 또는 우리를 형성해 간다고 말해도 지장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매사에 떳떳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떳떳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은, 떳떳하기 위해서 아둥바둥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남들에게 떳떳하게 보이기 위해서 꾸며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반대로, 노력을 해야만 떳떳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 자신의 삶에 떳떳해야 한다. 실수한 것에도, 능청스럽지 않게 떳떳해야 한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글귀를 혀로 굴러 본다. 고독하고, 불안하고, 또 우울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깊은 울림이 담겨 있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순간은 나를 자라나게 하는 양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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