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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밍/Thinking

23.07.17 - 아비투스를 읽고(1)

카카수(kakasoo) 2023. 7. 1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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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비투스란
아비투스는 프랑스 철학자 부르디외가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제2의 본성, 즉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취향, 습관, 아우라를 일컫는다고 한다. 계층 및 사회적 지위의 결과이자 표현이기도 하지만 저자는 “아비투스는 결코 돌에 새겨지지 않았다”고 선언한다. 너무 어려운 말이지만,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저 사람은 급이 다르다고 말할 때의 그 급의 차이는 어떻게 아는 것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흔히 끼리끼리 논다는 말을 많이 쓴다. 그 끼리끼리를 결정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저자는 이를 두고 아비투스라고 한다. 다행히 아비투스는 경제적 수준, 권력 등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아비투스는 사회, 문화적 수준에 가깝다. 따라서 내가 가진 것이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내가 상류층의 문화 양식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향유하는가에 따라 높은 수준의 ( 상류층을 더 높다고 말할 수 있다면 ) 아비투스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 아비투스는 관성과 비슷하다
왜 몰락 귀족들은 자신의 위치를 회복하고자 하는가. 그리고 왜 경제적 수준이 떨어져버린 중산층들은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는가, 그리고 왜 하류층들은 몰락한 이들과 동일한 경제적 수준을 가졌음에도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지 않고 당장 먹을 음식을 구비하는가. 문화적 수준은 떨어진 사람에게는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동기를 주고, 자신의 원래 수준보다 높은 곳으로는 가지 못하게 붙잡는 역할을 한다. 즉 아비투스는 회복과 족쇄의 역할을 한다. 이는 아비투스가 누군가에게는 축복이, 누군가에게는 저주라는 것이 아니다. 아비투스는 그저 관성이다. 내 문화적 수준을 회복시켜주는 아비투스는, 내가 더 높은 수준으로 가고자 할 때는 도리어 붙잡는 것이 된다.
 
3 문화적 수준은 자연스럽게 비춰진다
고급스러운 취미를 가진 사람들은 그 취미를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 샴페인은 이제 건달, 또는 졸부들의 문화가 되었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단골 와이너리에서 매일 마시던 것을 주문한다. 이들은 자신이 어떤 와인을 마시는지 티내지도 않고, 비싼 와인을 마시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평소 먹던 걸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 우리가 소주, 맥주를 마실 때 더 좋은 걸 찾으려고 하지 않듯이 ) 처음에는 이런 것들이 모두 어색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행동하지 못하고 자기가 걸친 취미, 문화 양식들이 어색하다면 차라리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화를 계속 향유하다보면 한 달도 안 되는 새에 결국 익숙해질 것이다.
 
4 불평하지 말라
자학 개그나 조소 같은 농담들은 동일한 문화 선상에 높인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웃길 수 있는 소재다. 하지만 다른 문화적 수준을 가진 이들에게는 상처가 되거나 대응하기 곤란한 소리일 뿐이다. 모든 수준에 통용되는 이야기를 하려면 차라리 관대함을 가지는 것이 낫다. 멜린다 게이츠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은 관대함(gentle)이라는 단어를 올해의 단어로 삼아 1년 간 상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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